턱얼굴(구강악안면)외과 (Maxillofacial Surgery-Oral Surg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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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ACTERISTIC

 

 

I 구강악안면외과학의 특성

1 . 구강악안면 부위의 특수성

신체 중 구강과 악안면부위는 심미적인 노출부위이며 생명유지의 기능부위이고 의사전달의 사회성과 심리 표출의 발현부위로서 신체 어느 부위보다도 훼손가능성이 높은 부위이다. 따라서 4천년전 인도지역에서의 범법자나 노예들을 벌하기 위해 코를 자르는 형벌 때문에 발생한 안모추형을 치료한 조비술의 발달 원인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2400여년전 Hippocrates가 만성자극이 설암의 원인임을 지적하고 코와 입술 등의 구강악안면부위가 암의 호발부위라고 언급한 이유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고고 인류학의 탐사결과인 50만년전의 빙하기 중기 이전으로 추정되는 "Kanam mandible" 화석의 하악골 정중부에서 골육종을 볼 수 있듯이 구강과 악안면부위는 신체 어느 부위보다도 먼저 식별이 가능한 질병의 발현부위로도 중요한 부위이다.

2. 생명의 잉태와 의술의 발전

구약성경 창세기 1장 27절의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의 말씀과 2장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 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생명이 있기 시작한 태초로부터 의술의 표현이 함께 한 것같이 생명의 잉태는 의술의 필연적인 태동과 발전의 필요성을 예지하게 한다. 이러한 의술의 발전은 종교개혁 같은 역사적 사회격 동기의 흐름과 증기기관차의 등장으로 인한 교통과 산업혁명 및 다이너마이트 발명에 따른 살상무기의 전시장이 된 전쟁 등으로 가속화되었지만, 실제로는 생명의 경외감속에 인간애에 뿌리를 둔 학구적이며 진취적이 고 확신에 찬 수많은 선각자들의 희생을 요구해 왔다.

3. 국내의 구강악안면외과의 발전

한국동란을 통해 괄목할 발전을 보인 국내의 구강악안면외과분야의 임상술기가 1959년 창립된 대학 구강외과학회를 중심으로 학문적 깊이와 체계적인 기틀을 마련하고 선진외국과의 활발한 인적교류를 통해 괄목 한 발전을 이루어 오다 치과대학생을 위한 공유적인 구강악안면외과학 교과서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1987년 국내 최초로 Kruger씨의 「TEXTBOOK OF ORAL AND MAXILLOFACIAL SURGERY를 대한 구강악안면외과 학회가 주관하여 공동번역 출간하였다. 이후에도 학회를 중심으로 치과대학과 의과대학의 구강악안면외과학교실을 비롯한 교육기관 및 종합병원 구강악안면외과에서 선진외국과의 학문적 교류의 활성화와 연구 및 교육을 통해 축적된 우리의 임상적 경험과 개발된 술기 및 정립된 이론들을 수렴, 비를 국내 집필진이 알맞게 집대성하여 학부학생, 수련의 및 일반 개원의를 위한 우리 교과서를 출판해야 한다는 당 위성이 높아져, 늦은 감이 있으나 학회가 주관이 되어 이 교과서를 출간케 된 것이다.

4. 구강악안면외과학의 특성

1) 복합된 전문 임상분야

구강악안면외과학이란 구강과 악안면 부위에 발생하는 감염, 손상, 기형 및 종양 등의 질병을 올바르게 진단 하고 외과적 시술과 보조적 치료를 통해 심미적 복원과 기능적 회복을 추구하는 특수한 치과 임상분야로서 외과의 여러 전문분야 중 독특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즉 구강악안면외과는 외과학 자체가 과학이며 예술 이란 바탕 위에 수기적 숙련도를 요구하는 기술적인 외과분야와 치과 고유의 특수분야가 복합된 전문분야일 뿐만 아니라,생명을 다룬다는 경외감속에 인격체인 환 자와의 일체감을 갖출 수 있는 인성교육이 무엇보다 우선해야하는 임상분야이다. 환자를 대할 때, 나이가 많은 경우이면 부모님이나 고등학교 은사님을 모시듯, 연령층이 비슷한 경우에는 친구나 애인같이, 나이가 어리면 귀엽고 사랑스런 동생 같이 대할 때, 환자와 고통을 같이 아파할 수 있으며, 환자의 눈 높이에서 전문의학용어가 아닌 환자의 언어로 대화할 때 환자와 술자와의 사이에 믿음과 존중의 인간 적인 신뢰의 유대감이 구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환자와의 일체감이 이루어 질 때 술자는 환자를 위한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술기개발의 사명감과 이를 위한 자기정진에 매진하게 되는 것이다

2) 인류애적 창의성과 도전적인 진취성

4천년전 인도지역에서 조비술이 발달하게된 연유도 이러한 환자와의 일체감속에서 인간애적 사랑과 환자의 고통을 덜어보려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열정이 이뤄낸 것임을 느낄 수가 있으며, 또한 19세기 중반에 이를 때까지 악골기형은 감히 고쳐볼 생각조차 못하던 사회풍조 속에서 미국 최초의 구강외과의사이며 미국 구강외과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하는 "SIMON P. HULLLIHEN"이 1849년 발표한 "다섯살 때의 얼굴 아래쪽 과 목부위의 화상으로 머리가 전하방으로 당겨져 턱이 흉골의 1인치 내에서만 움직이고 하악골은 약간 하방으로 굽어지며 길어져 상악골보다 3.5cm이나 돌출된" 흉물스러운 기형의 스무살된 여자환자를 기록상 처음으로 수술하여 악교정수술의 길을 터놓은 것도, 환자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 속에 같이 절망하며 일체감을 느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자기성찰과 함께 연구에 매진한 결과 역사적으로 초석이 된 술기를 창안하게 된 것이다.

5. 구강악안면외과학도의 책임

이러한 선각자들의 노력은 지나온 과거의 의술을 재검토하고 현재의 수준을 감안하여 보다 나은 내일을 위 해 실현 가능한 상상과 도전을 통해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1957년 Gillies경이 '플라스틱 물질 중 하나가 종국에는 모든 비자가이식체를 대신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제 시가 이물성형재료 연구에 박차를 가했고, 1965년 Branemark이 pure titanium fixture로 성공적인 인공 치아매식술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 오늘날 통상적인 보철물의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며, 면역학의 발전 에 따른 유전자 공법의 개발은 인공피부의 출현까지 가능케 하여 조작이 간편한 술기로도 악성종양 절제술 후 나 화상후의 처치 등이 용이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구강악안면외과학을 배우려는 치의학도는 끊임없는 학구적 정진을 통해 선학자들의 결실을 학습하고 다양한 술기에 대한 연마와 환자와의 인간적 교류를 통한 일체감 속에, 진취적이며 창의적인 도전과 희망과 꿈이 담긴 실현 가능한 상상을 통해 내일의 우리 나라 구강악안면외과학의 발전을 책임져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구강악안면외과학을 공부하는 조국의 젊은 치의학도에게 다짐해 본다. "자! 이제 그대들의 새로운 실현가능한 도전의 목표는 무엇인가!"

II 구강악안면외과학의 역사

1 . 세계의 구강악안면외과 역사

구강악안면외과 영역의 질환에 대한 기록은 오래 전 이집트시대(Ebers Papyrus, B.C. 1500년경)에 치은농양 등에 관한 것이 처음인 것으로 사료된다. 그리스 시대에도 Hippocrates(B. C. 460∼377)가 악골골절의 고정법, 악관절탈구의 정복법이나 발치법 등 구강악안면외과 관계의 치료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고 점차 외과영역의 학문적 체계를 구축하였다. 로마시대에 있어서도 의학, 특히 외과분야에 있어서 Celsus(B. C.30-A. D.50)는 구순열의 수술, 악골골절의 치료법이나 치아의 재식, 구강점막의 아프타성 궤양 등을, Galenos(A. D. 129 ∼ 201)는 치통이나 구강궤양 등에 대하여 외과적으로 기술하고있다.

이와 같이 구강악안면외과는 외과의 한 분야로서 발달했으며 그후 16세기경 프랑스의 외과의사인 Ambroise Pare(1517∼1592)가 구순열의 수술, 외상이나 매독에 의한 구개천공에 대한 전색자의(栓塞子) 제작, 지혈법, 붕대법 등을 시행하였다.

18세기에 있어서 독일에서는 Lorenz Heister(1682 ∼1758)가 개구장애에 대한 개구기(開口器)의 고안 등 구강악안면외과적 질환의 연구에 대하여 많은 공헌을 하였다. 또한 프랑스의 Pierre Fauchard(1690∼1762)는 치과의술을 체계화하여 구강악안면외과학 발전에 기여한 바 크다.

영국에 있어서도 외과의술이 직업으로서 확립되었고 프랑스(Academie Royals do Chirurgie, 1731), 오스트리아(Josephs Akademie, Wien 1785), 독일(Collegium Medico Chirurgicum, Berlin 1795)등에서도 외과전문 병원이나 외과학회가 창설되어 구강악안면외과학도 외과의 한 영역으로서 진보를 거듭하였다.

19세기 후반에는 미국에서도 의학교로부터 독립하여 1839년 Baltimore 齒學校 (Baltimore College of Dental Surgery)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창설되었으며 미국치과의사회(American Dental Association)) 1859년에 창립되었다. 또한 미국의 Long(1842), Well(1844), Morton (1846), Simpson(1847)에 의한 흡입전신마취법에 의한 무통적 조작이 개발되었다. 그 외 방부소독법(Lister Semmelweis), 무균법(Schimmelbusch), 지혈법(Esmarch) 개발 등은 구강악안면외과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다.

20세기에 와서 화학요법의 개발(Domagk 1932, Fleming 1929)등과 그후 각종 항생물질이 개발, 마취학의 진보, laser외과와 냉동외과(cryosurgery)등의 출현은 구강악안면외과 영역의 관혈적 수술기법의 확대에 공헌한 바 크다.


2. 한국의 구강악안면외과 역사

우리나라 고대조선의 의술은 중국의학의 유입과 신라시대의 불교문화의 전래에 따른 인도의설(醫說)의 수입에 의한 것이다. 즉 고조선 및 삼국시대의 문헌이나 유물에서 발치의 흔적은 발견할 수 있으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고려시대는 의료체계가 제도화되어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를 교육하는 교육기관과 의사자격을 검정하는 고시제도를 통하여 의사를 배출하였으며 몇 가지 종류의 의서도 있었던 것 같다. 당시의 의서인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는 치병(齒病), 치주질환 (齒周疾患), 구강질환(口腔疾患)등의 치료법과 예방법 등에 관한 기록이 있다.

조선 초기에는 억불숭유 정책으로 인하여 의사제도는 고려 때와 그 명칭을 달리하였으며 구강과 라는 분과나 특수교육은 없었던 것 같다. 조선조 후기 에도 전기와 같이 별 진전은 없었으나 동의보감 등에 치아 및 구강질환의 새로운 예방 및 치료법에 관한 기록은 있다. 그러나 의서나 비의서간에도 수술이라던가 발치 등에 대한 관혈적 처치방법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개화기인 조선조 말에 미국의사이며 선교사인 Horace N. Allen ( A. D. 1884)이 처음으로 발치기구를 사용하여 발치시술을 시행하였다. Allen(1885년 4월부터 1886년 4월까지)의 보고에서 충치 60례, 구내염 55례, 발치 15례, 악골골절, 구순파열, 중설(重舌) 및 교합의 수술을 시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1893년 일본인 치과의사 野田應治가 제물포에서 처 음으로 치과의원을 개설하여 새로운 직종으로 등장하였고, H. Slade(MD, DDS), J. Souers(DDS), D.E. Hahn등이 치과의료에 종사하였다. 한편 제중원(1085), 광제원(궁내부의원 1900), 세브란스 병원(1904)등 종합병원과 1899년 국고지원으로 의학교 가 설립되었으나 치과가 분과로 독립되지는 못했다. 1900년 한성의원에 치과를 두어 일본인 치과의사인으로 重城養二(1904)가 초대과장으로 취임하였고, 1909년 11 월 대한의원(후에 조선총독부의원으로 개명)에도 치과 진료과목이 분리되었다. 1915년 일본치과의전 출신인 함석태가 우리 나라 최초의 치과의사로서 서울 중구 삼각동에 개업하 여 구강외과 전문과목을 표방하여 환자를 진료하였고 한동찬(1917), 이희창(1921)등이 구강 외과환자를 진료하였다. 1921년 세브란스병원에 미국선교 치과의사인 J.L. Boots와 J.A. McAnlis가 치과에 부임하여 구강외과환자를 진료하였다. 1922년 우리 나라 최초의 치과학교인 경성치과의학교(3년제)가 설립되어(1929년 전문학교로 승격됐다), 동 부속병원 구강외과에 西山莘男( 日本 大阪齒졸)이 교수로 취임하고 수년후 垣見庸三이 주임 교수로 취임하여 많은 일본인과 이춘근교수를 위시하여 여러 한국인 교실원들이 구강외과교육과 진료에 종사하였다. 또한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齒科學 교실에는 최초로 生田信保(Ikuda)교수와 경성의학전문학교 齒科學교실에는 Hirose교수와 일본동경의과학교에서 구강외과를 수련한 박용덕 교수가 세브란스병원에서 구강외과환자를 진료 하였다. 해방후 1946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는 이춘근, 오재인, 김용관등이 구강외과학 교육에 참여하였고 1952년 4월에 대학원 석사과정 이, 1960년에는 박사과정이 개설되었으며 1956년 3월 처음으로 두사람의 치의학석사(구강외과학 전공)가 탄생하였다. . 1959년 1월 대통령령 제1430호로 국립대학교 설치령이 개정되어 동년 4월에 치의예과가 개설되어 의과대학과 같이 치과대학도 6년제 교육제도로 발전되었다. 1959년 6월 대한구강외과학회의 창립, 1960년 38선 치과학회 탄생, 1962년 11월 대한악안면성형외과학회가 창립되었으며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후 미국군의관(C.C.Alling, R.S.Shira, D.E.Cooksey등) 과 일본인 교수등이 내한하여 대학과 학회의 학술대회를 통하여 선진국과의 교류를 통한 친목도모는 물론 학술교류증진에 커다란 발전을 가져왔다. 그리고 조국동란과 월남파병등은 많은 악안면외과 환자들을 접할 수 있었던 기회였기에 이역시 구강안면외과학의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생각된다. 1970년도에는 치과대학 교수요강과 대학설치 기준령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게 되어, 3개 치과대학 학장단 회의에서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하여 구강외과 교수요강을 제정하여 이를 학생교육에 적용토록 하였다. 1987년 9월 대한 구강악안면외과학회 산하의 10개 치과대학 구강악안면외과교수로 구성된 교과과정위원회는 여러 차례 워크숍을 통하여 우리 나라 구강악안면외과학의 교육표준화를 위해, G.O. Kruger의 [Text-book of Oral and Maxillofacial Surgery 6th Edition 1984. The C.V. Mosby Company]의 한글번역판을 교과서로 편찬하여 학생교육에 많은 도움을 되었다.

1959년 6월에 대한구강외과학회가 탄생되고 그 명칭도 1984년에 대한구강-악안면외과학회, 1994년 대한구강악안면외과학회로 개칭되었고, 1975년에 학회지가 창간되어 그 명칭도 함께 변경되었다. 현재 계간지(년4회)로 많은 임상 및 기초연구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1962년 11월에는 대한 악안면성형외과학회가 창설되었고 1989년 그 명칭도 대한악안면성형재건외과학회로 개칭되고 1978년에 학회지를 처음 발간하여 현재까지 많은 학술논문이 발표되고있다 1991년 10월부터 치과계 최초로 대한악안면성형재건외과학회에서 인정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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